[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단아한 선율과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대위법. 바흐 음악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절제’와 ‘자연스러움’이란 덕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처럼.

엄격하지만 자연스러운 연주
바흐는 엄격하지만 그렇다고 경직된 음악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오히려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하는 낭만주의나 현대음악에 비해 한결 자연스런 흐름으로 진행된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엄격한 균형을 유지하는 절제가 필요하다. 낭만주의 음악에선 절정에서 악기간의 밸런스가 무너지며 나타나는 클램핑(clamping)을 용인한다. 어떤 경우엔 의도적으로 클램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바흐의 음악에서 균형은 절대적이다.

합창단은 조화의 측면에서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다.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모든 성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조화로운 흐름의 음악을 연주했다. 많은 경우 멜로디를 연주하는 소프라노의 성량을 크게 잡는데 박치용 지휘자는 4성부의 성량을 고르게 지휘했다. 앞서 언급한데로 바흐의 음악은 핵심은 대위법이다. 각각의 성부가 서로 상응하기 위해선 서로 동일한 음량으로 연주할 필요기 있는데 이점에서 박치용의 선택은 탁월했다.

이날 반주는 서울모테트쳄버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최근 바흐 음악에서 호평을 받는 연주단체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 악단은 기본적으로 현대악기를 기반으로 한다. 바흐 연주의 트렌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대학의 음악학 교수 마르틴 게크(Martin Geck)는 “현대인의 귀는 현대음악과 현대악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연주보단 현대연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게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모테트합창단과 쳄버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은 연주양식의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폭넓은 레퍼토리와 표현력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연주회 2부에서 20세기의 모테트와 독일예술가곡 그리고 한국가곡을 연주했다. 합창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세기 초에 생겨난 다성 성가를 의미하는 모테트를 모토로 하면서도 과거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얻볼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이었다.

합창단은 바흐를 연주할 때는 비브라토를 절제하며 정갈한 선율과 화음으로 노래했다. 하지만 독일예술가곡과 한국가곡을 연주할 땐 약간의 비브라토를 가미했다. 근현대의 음악을 바로크 양식으로 연주하면 다소 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창단의 표현력과 레퍼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특히 2부에서 합창단은 반주 없이 합창단의 소리만으로 연주홀을 채웠는데 깊은 호흡에서 우려져 나오는 깊은 울림은 인상적이었다. 다소 난해한 화성에도 흔들림 없는 소리는 평소의 연습량을 가늠케 했다. 특히 조나단 피킨이나 앤드류 심슨의 현대적 감각의 모테트에선 박치용과 합창단의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적인 모테트의 화성과 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연주가 더해져 매력적인 음악이 됐다.

다만 마지막 무대의 한국가곡은 이날 연주회에서 가장 이질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합창단은 바흐의 칸타타를 시작으로 독일음악의 특성을 이어받은 슈베르트와 슈만의 예술가곡 그리고 모테트를 모던하게 발전시킨 현대 모테트 작곡가들의 음악까지 빈틈없는 프로그램 구성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가곡은 이러한 프로그램 흐름에서 다소 벗어났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려웠다.

서울모테트합창단 제103회 정기연주회
10월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박치용, 피아노 반주: 이수경
반주: 서울모테트쳄바오케스트라
바흐: 칸타타 BWV 48 “나는 불행한 자,누가 나를 구원하리”
바흐: 칸타타 BWV 109 “나는 믿나이다, 사랑하는 하나님, 신앙이 없는 나를 도와주소서”
슈베르트: 밤과 꿈, 달에게
슈만: 비애, 달밤
조나단 피킨: 노래하라
앤드류 심슨: 일어나 빛을 발하라
에드워드 C. 베어스토우: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나운영: 달밤
채동선: 망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