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위한 음악… 배고프지만 영혼은 충만

모두들 망한다고 했다. 민간 직업 합창단인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출범할 때의 말이다. 합창단의 설립자이자 지휘자인 박치용(47)씨가 26세이던 1989년. 군 복무를 막 마친 까까머리의 박씨는 대학 선후배와 동료, 교회 청년 20명을 모아 합창단을 조직했다.

사실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는 '풀타임' 직업 합창단은 명맥이 짧다. 83년 합창단원들에게 당시 대기업 신입 사원의 월급인 40만원을 지급하며 파격적으로 시작한 대우합창단도 5년 만에 해체됐다. 신동아그룹의 횃불합창단도, CBS의 합창단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순수예술을 하면서 재정 압박을 이겨낼 장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은 20년 간 '선방'했다. 70여회의 정기연주회와 800회의 순회공연으로 말이다. 40명의 단원들은 국·공립 합창단의 3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헌신했다. 매년 7억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한데 3분의 1은 후원으로, 나머지는 연주 수익과 정부 문화행사 프로젝트에서 충당한다. 교회 공연은 사례비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디든지 달려갔다. 울릉도에서 비금도까지 전국을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늘 물어봐요. 어렵지 않느냐고. 왜 안 어려웠겠습니까. 그동안 한 해도, 한 달도, 하루도, 한 시간도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다른 단원들도 합창단 탈퇴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늘 닥쳐온 위기는 각성을 낳았고 각성은 창조력을 부여했습니다. 인간을 기쁘게 하는 음악이 범람하는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음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모테트(motet)'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 짧은 성시나 성경 구절을 가지고 만드는 무반주 합창 음악으로 교회음악의 뿌리다. 단원은 모두 크리스천이다. 단원들의 연령대는 대학을 갓 졸업한 23세 청년부터 인생의 후반전을 맞은 50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연습실은 서울 도곡동 기쁨병원 5층에 있다. 이 병원 강윤식 원장이 지난 10년 간 보이지 않는 도움을 줬다. 연습은 월∼금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한다. QT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반드시 기도로 마무리한다. 그렇다고 연습이 느슨한 것도 아니다. 한 번도 휴식시간을 갖지 않고 스파르타 식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연습은 중노동이나 다름없다.

17년 간 소프라노를 맡아온 김선우(50·여)씨에겐 지휘자가 남편보다 더 오랜 시간 눈을 맞추며 호흡하는 파트너다. "정말 지휘자가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지적하세요.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없어요. 그렇지만 지휘자의 따끔한 충고와 신학 지도가 큰 도전이 됩니다. 저는 여기서 신앙심을 키웠어요. 단원들은 지휘자를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로 존경합니다." 11년차로 합창단의 '코치'격인 트레이너 민태경(42)씨는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가족처럼 그리웠던 곳"이라며 "음악적 수준을 높이고 열정을 되찾게 해줬으며 음악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너무 고마운 터전"이라고 말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라 했던가. 중노동에 가까운 연습과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공연은 실력으로 나타났다. 2002년엔 한국 대표 합창단으로 일본 문화청의 초청을 받아 공연을 가졌으며, 2004년 게일문화상, 2005년엔 제37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음악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이 선보이는 '마태수난곡'은 사실 3시간 넘는 대작이기에 '업계'에선 잘 건드리지 않는 곡이다. 악보만 해도 200쪽이 넘는다. "작품 난이도와 음악·역사적 가치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 곡을 논하지 않고는 교회음악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합창단의 20년 역사를 대변하는 음악으로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1700개의 좌석 중 90% 이상이 판매된 상태다. 공연은 3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02-579-7295).

마태수난곡
바흐 종교 음악 중 최고의 걸작… 연주에만 3시간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의 작품으로 종교음악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마태복음 26·2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예수 수난기념일인 성금요일에 교회에서 많이 연주해왔다. 바흐가 죽은 뒤 잊혀졌다가 1829년 멘델스존이 '부활'시켰다. '요한수난곡'과 함께 바흐의 종교음악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1729년 4월15일 성금요일에 토마스교회에서 초연됐으며, 최종판은 1736년쯤 완성됐다. 이 작품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는 마태복음 26장 1∼56절까지이며, 2부는 26장 57절에서 27장까지이다. 제1부에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음모, 성찬식, 겟세마네의 기도, 유다의 배반을 내용으로 29개 곡이 포함돼 있다. 2부는 베드로의 부인, 빌라도의 심판, 유다의 죽음, 골고다 여정,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죽음, 매장 등 39곡으로 구성돼 있다. 1·2부 각각 1시간30분 분량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